본관
본관
우리는 흔히 본(本)이 어디냐고 묻고 대답한다. 이때 본(本)은 본관의 준 말이고 성씨의 근본을 뜻한다. 본관은 시조가 태어났거나 오래 살아온 곳으로 연고가 깊은 지역을 본관으로 정하여 사용하였으며 다른 이름으로 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성씨의 본관은 대부분 신라나 고려 때에 만들어졌고 역사적으로 임금이 공적에 대한 보답으로 본관을 내려준 일도 있었으며 특히 조선왕조 때에는 본관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평양조씨 본관의 유래
평양조씨의 본관은 처음에는 상원(祥原)이었다. 상원은 고구려 때에 식달(息達)이었으나 4世 趙瑩의 부인 토산군부인(土山郡夫人)이 해를 몸 안에 품은 꿈을 꾸고 임신하여 아들(貞肅公)을 낳았기 때문에 상서(祥瑞:복스럽고 길한 징조)롭다 하여 息達을 祥原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1322년(忠肅王9년) 공신(功臣) 趙仁規의 고향을 배려하여 군(郡)으로 격을 높였다.
※ 新增東國輿地勝覽 卷55, 高麗史 卷105 列傳18 趙仁規傳 및 : 高麗史 卷89 列傳 卷第2 后妃2 趙妃傳, 高麗史節要 22 忠烈王5. 34年項. 祥原邑誌 참조 이와 같이 本貫이 祥原으로 내려오다가 1307년에 정숙공이 平壤君의 작위(爵位)를 받은 후(高麗史32권 世家32 忠烈王5-33年條項) 충렬왕의 명으로 본관을 祥原에서 平壤으로 바꾸게 되었다.
※ 高麗史 卷33 世家卷33 忠宣王 卽位年, 麗史提綱 忠宣王 卽位年項, 癸卯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