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世 文忠公 준(浚)의 아들로 자(字)는 겸지(謙之)이며 평양부(平壤府)의 사람이다. 1402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덕수궁제공(德壽宮提拱)에 보직되고 다음해에 호군(護軍)에 임명되었으며,1403년 겨울에 경정공주(慶貞公主)와 결혼하여 평녕군(平寧君)에 봉해졌다.
1405년에 평양군(平壤君)으로 고쳐 봉하고 그 후에 북방의 평정을 하례하는 사절로 북경에 갔다 와서 1416년에 숭록(崇綠)으로 승진되고 다시 사은사(謝恩使)로 북경에 갔으며, 1422년에 보국숭록(輔國崇綠)에 올라 평양부원군이 되었다. 또 자급(資級:벼슬의 위계)을 더하여 대광보국(大匡輔國:正一品)이 되었는데 이에 이르러 병사(病死)하였다.
조정에 부음(訃音)을 아뢰니 3일간 조회를 정지하고 쌀. 콩 아울러 70석. 종이 2백 권을 부의(賻儀)로 내리고 시호(諡號)를 강안(康安)이라 내리니 온공(溫恭) 유화(柔和)하여 화락(和樂)함을 즐기는 것을 강(康)이라 이르고 너그럽게 용납하고 평화스런 것을 안(安)이라 이른다. 아들은 하나이며 무영(武英)이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 산 25번지에 모셔졌다.
*경정공주(慶貞公主:1384~1455)
경정공주는 康安公의 婦人으로 태종대왕(太宗大王)의 둘째 딸이며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소생으로 의용(儀容)이 단장(端莊)하고 기질이 부드럽고 겸손하였다.
성실(誠實)하고 강안(康安)한 귀한 몸이었다. 아랫사람을 잘 거느리고 부덕(婦德)과 백복을 갖추었으며 금슬도 좋았다. 부모에게 효하는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 부녀(婦女)가 본받을 풍속에 삼종지의(三從之義)를 갖추었다. 묘소는 고양시 내유동 산 79번지 사패지지(賜牌之地)에 모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