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世 충숙공 련(璉)의 셋 째 아들로 호는 임정(林亭)이다. 은청광록대부 판도판서 삼사사(銀靑光祿大夫 版圖判書 三司使) , 그리고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開城府判府尹)벼슬을 하였다. 공은 행적이 전해지지 아니하여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없으며 다만 조씨임정기(趙氏林亭記)에 의해 극히 일부를 돌아보는데 그쳐야 한다.
공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병이 들자 도성(都城)근교의 평주(平州)지역 (平州之南 鐵峯之東:행정구역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였음)에 새로운 생활의 터(복거:卜居/좋은 땅을 찾아 살 곳을 정함)를 잡고 요양하기를 권유하여 아들 형제(瑚·琓)가 곁에서 모시면서 아침저녁으로 받들었다.
이 지역은 경읍(京邑:都城으로 추정됨)에 가깝고 사대부(士大夫)의 별장(別墅)이 많아 관청이 한가할 때 휴양하는 곳이기도 하며 세속을 피하여 시를 짓는 경치 좋은 지역으로 임정기(林亭記)에 기술되었다. 다만 임정기를 기술한 시기의 기록이 없어 아쉬운 일이나 1350~1396년의 기간으로 추측된다. 연대를 추정하려는 이유는 공이 순수한 요양을 위한 복거(卜居)인지 또는 은거(隱居:세상을 피하여 삶)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1300년대 후반의 가족상황은 큰 아들 호(瑚)는 이성계의 위화도회군(1388년) 이후 1392년 정몽주(鄭夢周)가 이성계(李成桂)를 지지하는 새로운 세력을 제거하려는 계획에 참여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구금된 후 직첩(職牒)을 회수 당하고 장형(杖刑)을 받은 다음 귀양을 간 시기로 만약 공이 수(壽)하여 조선왕조 개국을 맞이하였다면 당시 가정상황으로 보아 은거의 가능성이 있으며 행적의 기록이 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묘는 실전되어 확인할 길이 없고 매년 10월 3일에 보본단에서 추향제를 올리고 있으며 충남 태안군 태안읍 평천리 산95-2번지에 설치한 회곡단(檜谷壇:8世 瑚를 모신 壇) 에서 4 월 둘 째 일요일에 춘향제(春享祭)를 같이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