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世 정숙공 인규의 셋째 아들로 고려후기의 문신으로 최초의 이름은 후(珝)였으나 뒤에 연수(延壽)로 고쳤다. 충렬왕 때 급제하였으며 9살 때 문자(門資:공신의 자손이 문벌의 특별한 연줄로 벼슬에 임명 되는 일)로 롱서목감(?西牧監)이 되었다가 뒤에 발탁되어 춘궁 조산대부 호부시랑(春宮 朝散大夫 戶部侍郞) 춘궁시독 이부시랑(春宮侍讀 吏部侍郞) 직보문각비서감(直寶文閣秘書監) 소용대장군 은청광록대부 (昭勇大將軍 銀靑光祿大夫) 검교호부상서 겸 판각문사(檢校戶部尙書 兼 判閣門事).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동중서문하평장사 호부상서 (同中書門下平章事 戶部尙書) 어사대집의 사도 지추밀원사 (御史臺執義 司徒 知樞密院事) 어사대부 한림학사 대광 문하시랑평장사(御史大夫 翰林學士 大匡 門下侍郞平章事) 우복야 보문각대학사(右僕射 寶文閣大學士) 상장군(上將軍)등 많은 벼슬을 하였다. 충숙왕 을 축 1325년 6월에 48세로 작고하였다. 묘소는 북한 땅 천화산에 모셔진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확인할 수 없고 매년 10월 3일에 보본단에서 추향제를 올리고 있다.
2018.07.16 11:24
6세 후(珝 : 문극공 - 諡 : 文克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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