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양부근 상원에 터를 잡고 평양조씨 시조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 평양조씨 시조(始祖)의 선계(先系)가 다른 조씨 일족과 함께 평양부근 식달(息達 : 祥原)에 터를 잡고 평양조씨의 시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진단학보(震檀學報) 제42.43.44호에 게재되었던 민현구의 논문 <<조인규(趙仁規)와 그의 가문(家門)>>에 "『충숙왕 9년에 공신인 평양군 조인규의 조모향(祖母鄕)이므로 상원군으로 승격시켰다』는 고려사의 내용에서도 그의 선조(先祖)가 상원(祥原)에서 어느 정도의 생활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라고 기술한 내용을 참고하면 우리 선조(先祖)가 평양부근 상원(祥原)에 터를 잡은 사실이 증명되었다 할 수 있다.
2) 고려의 상장군으로 병력을 이끌고 남송을 도와 금나라를 공격하여 세운 공로로 금자광록대부 추밀원부사(金紫光祿大夫 樞密院副使)의 관직을 받았다.
송(宋)나라는 금(金)나라의 공격을 받아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1126년에 흠종(欽宗)이 금(金)나라에 항복하여 북송(北宋)이 멸망한 해다. 시조(始祖)에 대한 행적은 계묘보(癸卯譜)의 기록대로 전란을 겪으면서 기록이 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