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공파조(校理公派祖) : 계종(季宗)
(10世 1441∼1480年代 통정대부/通政大夫 正三品)
(교리공 묘소) (10世 교리공 ~ 15世 사당)
公은 9世 아(雅)의 네 아드님 가운데 셋째 아드님으로 교리공파조(校理公派祖)이다.
파(派)의 이름은 1791년에 현령 계종파(縣令 季宗派)이었으나 1802년에서 1900년 까지
군수공파(郡守公派)로 변경되었다가 1901년에 교리공파(校理公派)로 바꾸어 지금 까지
내려오고 있다. 관직(官職)은 일찍이 문과(文科)에 합격(及第)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
사간원 사간(司諫院 司諫)과 교리관(校理館 校書館)의 교리(校理), 외직(外職)으로
영암군수(靈巖郡守)를 역임하였다. 1480년에 둘째조카 요경(堯卿) 셋째조카 준경(俊卿)
종손 팽령(彭齡)을 거느리고 충남 태안에 터를 잡고 생활(卜居 : 좋은 땅을 찾아서
살 곳을 정함)하였다.
묘소(墓所)는 충남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방죽안:즙방축 건좌 합폄/楫防築 乾坐 合窆)으로
모셔졌고 그후 2013년 4월 6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 1311-3번지(사당옆)으로
다시 모셨습니다. 후손들은 충청, 서울, 경기에 살고 있으며 충남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에서
선영(先塋)을 모시고 번영하고 있다.
[주] 교서관(校書館)은 조선왕조 때 경서의 인쇄, 활자의 조각 보관 등을 맡은 관청이며
교리(校理)는 교서관(校書館), 홍문관(弘文館)의 정오품 관직(正五品 官職)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