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공파조(大司憲公派祖) : 숙종(叔宗)
(10世 1300~1400年代 대사헌/大司憲 從二品)
공(公)은 9世 사인(舍人/諱:雅) 네 아드님 중 둘째 아드님으로 대사헌공파조(大司憲公派祖)이다. 파(派)의 이름은 1791년 신해보(辛亥譜)에 군수공파(郡守公派)로 정하여 1850년 경술보(庚戌譜)의 기간인 1900년까지 군수공파(郡守公派)로 내려왔으나 1901년 신축보(辛丑譜)에서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로 파(派)의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공(公)은 1451년 조선왕조 문종(文宗)때 문과에 합격(及第)하였고 세조(世祖)를 도와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이 되었으며 계양군(桂陽君)이하 40인에게 공훈을 내릴 때 여기에 포함되어 종이품(從二品)의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嘉善大夫 司憲府 大司憲)의 관직에 임용되었다.
공(公)은 세조(世祖) 5년 11월에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가 상참(常參/주 참조)을 받고 정사를 볼 때 임금으로부터 경서(經書)를 강(講)하라는 임무를 받기도 하였으며 특히 영광군수(靈光郡守) 재임기간에는 군정(郡政)을 바르게 수행하고 송사를 잘 다스려 능력을 보여주자 영광(靈光)의 지역주민들이 돌을 깎고 재목을 모아 높은 누각(樓閣/高閣)과 홍문(虹門)을 만들어 주었다는 망원루기(望遠樓記/주:2 참조)가 있다.
묘소(墓所)는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이패리 산57의 7번지이었으나 묘역(墓域)이 군사보호지역으로 편입되어 부득이 1987년 9월 17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산5번지 사인공묘역(舍人公墓域)으로 모셨고 음(陰) 10월 2일에 추향제(秋享祭)를 올리고 있으며 후손은 충남 서산, 태안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해 오고 있다.
[주:1] 常參이란 중신(重臣) 시종신(侍從臣)이 매일 편전(便殿)에서 정사를 보고하는 일
[주:2] 望遠樓記는 조선왕조 초기 이조참판(吏曹參判)이었으며 문필에 이름이 높았던 이숙감(李淑?:1485년 서거정 등과 함께 신편동국통감도 편집)의 楊原集에 수록된 내용임.
望遠樓記 樓在靈光郡 ― 前略 ― 今 郡守 平壤趙候 叔宗 下車有年 政平訟理 知民之可與有爲也 乃謀諸鄕之父老 鑿石鳩材 功役四集而高閣虹門 不日而告成 ― 下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