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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世 판서공(判書公) 조윤선(趙允瑄)

 

조씨 임정기(趙氏林亭記)

 

평양 조씨(平壤趙氏)는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이 충렬왕(忠烈王)을 보좌하며 원 세조(元世祖)를 섬겨 성대하게

원(元)나라의 관원이 되면서부터 여러 자제들이 모두 대관(大官)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둘째 아들

인 충숙공(忠肅公 조연(趙璉))이 특히 중후(重厚)한 군자의 면모를 갖추었으므로, 지금까지도 칭송해 마지않고 있다.

그의 아들인 판서공(判書公)이 병으로 사직을 청한 뒤에 평주(平州 평산(平山)의 옛 이름) 남쪽 철봉(鐵峯)의 동쪽에서

 안식을 취하며 휴양하자, 그의 아들 형제가 옆에서 모시면서 아침저녁으로 봉양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조씨의 임정(林亭)이 세워지게 된 연유이다.

 

 판서공의 둘째 아들로서 통례문 판관(通禮門判官)으로 있는 조완(趙琬)이 나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우리 부모님이 여기에다 터를 잡고 사신 뒤로 대개 몇 년이 지나는 동안, 거처하실 곳도 그런대로 구비되었고 드실

 음식도 그런대로 갖추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대개 우리 구씨(舅氏)인 사암공(思菴公) 유숙(柳淑)1)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생활을 담박하게 하는 가운데 더 이상 맛보고 싶은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만, 형체를 잊음으로써 세상의 일도 자연히

잊게 되고 몸을 즐겁게 함으로써 마음도 자연히 즐겁게 되기에 이르렀으니, 우리 부모님이 여생을 보내면서 후손을

 보호해 주는 그 도리가 조금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또 우리 형제가 화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선침(扇枕)2)을 하고 있으니, 그 즐거움이 또 어떻겠습니까. 바야흐로 여름날의

경치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되면, 산 빛과 물 기운이 위아래에서 스며들어 촉촉이 적셔 주는 가운데, 비가 오려고

할 때의 풍경이라든가 갖가지 모양의 구름들이 아침저녁으로 바뀌어 가면서 우리 어버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고

있으니, 이것은 또 하늘이 우리 조씨의 임정(林亭)3)을 완전무결하게 만들어 주려는 것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가 마음속으로는 실로 유쾌하게 여기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자신의 입으로 떠벌릴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또 이에 대해서 또 글로 남겨 두지 않는다면, 어버이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널리 드러낼 수가

없게 되어, 임정을 지은 것 역시 부역(賦役)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이나 명예를 구하기 위하여

승경(勝景)을 표방한 사람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께서 기문을 지어 주셨으면 합니다.”

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군자가 자기 어버이를 모실 적에는 심지(心志)와 구체(口體)의 봉양4)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조씨 형제와 같은 경우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조화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평주(平州) 고을로 말하면, 경읍(京邑)과 거리가 가까운 관계로 사대부의 별장이 많기도 한데,

벼슬을 하고 있거나 그만두었거나 간에 왔다 갔다 하기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따라서 조씨 형제들도 관청의 일이 조금 한가하거나 휴가를 얻을 틈이 생기면 필마(匹馬)로 드나들곤 할 테니,

어찌 유독 임정에서 어버이를 즐겁게 해 드리는 일만 서술할 수가 있겠는가.

그 도로 상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는 흥치 역시 형제들 스스로 터득한 점이 또 깊으리라고 여겨진다.

나는 병이 들어서 문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지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조씨 형제에 대해서 더욱 부러운 마음이 들기에, 끝에다 이 점을 조금 언급하게 되었다.

백씨(伯氏)5)는 이름이 조호(趙瑚)로, 나의 문생(門生)6)이다.

 

1) 구씨(舅氏)인 사암공(思菴公) 유숙(柳淑) : 7世 조호, 조완의 외숙부이다.

2) 선침(扇枕) : 어버이를 극진하게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황향(黃香)이 무더운 여름철에는 어버이를 위해

   위해 침상에서 부채를 부쳐 시원하게 해 드리고[扇床枕], 추운 겨울철에는 자신의 체온으로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해 드렸던[身溫席] 고사가 전한다. 《東觀漢記 黃香》

3) 임정(林亭) : 숲속의 정자

4) 심지(心志)와 구체(口體)의 봉양 : 심지의 봉양은 어버이의 뜻에 맞추어 드리는 것을 말하고, 구체의 봉양은

   의식(衣食)을 풍족하게 해 드리는 것을 말하는데,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이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5) 백씨(伯氏) : 남의 맏형을 높혀 이르는 말 (여기서는 8世 조호를 말함)

6) 문생(門生). : 고려시대 과거 고시관을 지공거, 동지공거라 부르고 합격자들을 자기의 제자로 인정했음.

   또한 합격자들은 고시관을 스승으로 여기며 부모와 동일시하고, 혼맥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음.

주석 : 조씨임정기는 목은문고 제3권 기(記)와 동문선 제73권 기(記) 수록되어 있고,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음.

        7世 조윤서 아들들의 효행을 나타내는 글.

 

직책연표

 

은청광록대부 판도판사 삼사사 판개성부사(銀靑光祿大夫 判圖判書 三司使 判開城府事)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 고려 후기 문산계 품계 정3품이나, 정1품이 없던시기여서 정2품으로 재상반열이다.

판도판서(判圖判書) : 고려 육사(六司)의 하나로 재정을 담당하던 판도사(版圖司)의 관리로 조선시대 호조(戶曹)임.

삼사사(三司使) : 중앙과 지방의 전곡(錢穀)의 출납과 회계의 업무를 총괄하는 관청 삼사(三司)의 정3품 관직.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 고려 시대 도성(都城)을 관장하는 개성부(開城府)의 가장 높은 벼슬로 종2품 관직 역임.

   판개성부사는 지부사(知府事) 판부윤(判府尹) 부윤(府尹) 판부사(判府事)등 명칭이 계속 변경되었고,

   도성 밖의 행정은 개성현(開城縣)을 두어 따로 관리했다. 장남 조호의 스승인 이색도 역임한 직책임.

 

가족관계

 

조윤선(趙允瑄) 6世 조련의 삼남

 

부친은 조련(趙璉) 모친은 초배 안동김씨 김혼(金忻)의 따님, 이배 양천허씨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의 따님.

 

배위는 서산류씨(瑞山柳氏) 태상경(太常卿) 류성계(柳成桂)의 따님. 부친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증 도첨의평리(都僉議平理)·상호군(上護軍) 류굉(柳宏) 조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증(贈)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 감수국사(監修國士)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 류공기(柳公器)

모친은 진주강씨(晉州姜氏) 강문세(姜文世)의 따님

 

장남 : 조호(趙瑚1335~1410) 대사헌공파 파조 조숙종 교리공파 파조 조계종의 조부

        호는 회곡(檜谷) 또는 회석(檜石) 벼슬이 2품에 이름

        1365년(공민왕 14) 10월 을사방(乙巳榜) 병과(丙科) 3위로 과거급제

        1383년 이전에 판사(判事) 역임.

        1389년 밀직사사(密直司使) 역임.

        1401년 예문관태학사(藝文館太學士)

        1401년 검교 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

        고려가 기울어져 갈 때 이색, 우현보, 정몽주, 설장수, 김진양, 이숭인등과 함께

        고려의 존속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3남 3녀를 낳았다.

 

1남 : 조아(趙雅) 호는 수매당(粹梅堂)

       통정대부 의정부 사인((通政大夫 議政府 舍人) 배위는 개성왕씨 원윤(元尹) 왕회(王回)의 따님.

       조부 영복군(永福君) 왕격(王鬲) 증조부 순안군(順安君) 왕방(王昉) 고려 현종의 사남인 평양공 왕기의 후손.

       모친은 진천송씨(鎭川宋氏)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송무(宋懋)의 따님. 송무의 모친은 이제현의 둘째 따님.

       4남 5녀를 낳았다.

 

2남 : 조수(趙須) 자는 형부(亨父) 호는 송월(松月) 송월당(松月堂) 만취(晩翠) 만취정(晩翠亭)

       세종후기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들의 스승이다.

       1401년 신사년(辛巳年) 증광시(增廣試) 동진사(同進士) 3위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1406년 병조정랑(兵曹正郞)

       1409년 내섬시소윤(內贍寺少尹)

       1435년 모친상

       1435년 호삼성(胡三省, 1230-1320)이 지은 음주자치통감(音註資治通鑑) 해석하고

          자치통감(資治通鑑) 1백 권을 함께 받쳤으며, 후에 집현전에서 주희(朱熹.1130~1200)가 편집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과 논어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분류한 근사록(近思錄)을 간행했다.

          근사록은 금속활자 경자자(庚子字)로 인쇄되었다.

       1437년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1438년 집현전 부제학(副提學) 최만리(崔萬理) 김빈(金鑌) 이영서(李永瑞)등과 함께

          당나라 문장가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의 시문집인 주문공교창려선생집(朱文公校昌黎先生集)에

          주석을 달아서 책으로 만들었다.

       강릉김씨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자는 열경(悅卿)으로 5살 때 조수가 지워주며 시문을 가르쳤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어주었다.

       김시습의 또 다른 스승 유방선(柳方善)은 조수의 외사촌 유기의 아들이다.

       조수의 제자중 한 명이 동문선의 저자 서거정(徐居正)이다.

       조수는 30여년의 고난을 이겨내고 학문에 전진하여 세종때 성균사예가 되어 집현전학사들을 지도하였다

       학문에 정진하여 명성이 있었고, 특히 한유(韓愈)의 글에 정통하였다.

       조수는 “총명한 것이 많이 읽는 것만 못하다. 나는 모든 글에 있어서 반드시 백 번씩 읽었다.

       이리하여 비록 늙었으나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후학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등

       당시의 학문진흥에 공헌하였다.

       동문선(東文選) 해동잡록(海東雜錄) 고금소총(古今笑叢) 등에 8世 조수의 글이 많이 남아 있다.

 

3남 : 조희민(趙希閔) 군호 평천군(平川君)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1400년 판전중시사(判殿中寺事)

       1401년 외사촌 유기(柳沂) 와 함께 익대좌명공신 3등에 책록됨

       1402년 완산부윤(完山府尹)

       1404년 총제(摠制) 일 때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1405년 평천군(平川君) 군호를 받고 한성부 윤(漢城府尹)을 겸함.

       1407년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4남을 낳았다.

 

차남 : 조완(趙琬) 통례문판관(通禮門判官) 홍천목사(洪川牧使) 우군총체(右軍摠制)

        경주부윤(慶州府尹정2품) 함길도 선위사(咸吉道宣慰使) 역임. 무후(無后)이다.

 

장녀 : 연안김씨(延安金氏)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 김자지(金自知1367~1435)

        시호 문정(文靖) 자 원명(元明) 호 일계(逸溪)

        부친 밀직제학(密直提學) 김도(金濤) 조부 김광후(金光厚) 증조부 김우(金祐)

        모친 죽산안씨 안수제(安受禔)의 따님.

        1385년(우왕 11) 18세에 과거합격 사람됨이 중후(重厚)하면서 총명하여 음양(陰陽) 복서(卜筮)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약(醫藥) 음률(音律) 등 여러방면에 능통했으며, 형조참의 형조참판 호조참판 형조판서등을

        지내며 태종 세종대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9남 1녀를 낳았다.

        김위(金偉) 김경(金俓) 김잉(金仍) 김유(金攸) 김하(金何) 김해(金侅) 김비(金備) 김수(金脩) 김구(金俱)

        사위 남양홍씨 홍척(洪陟)

 

차녀 : 연안이씨(延安李氏) 익위(翊衛) 이간(李衎)은 연안이씨 용천중화파의 파조이다.

         부친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 이무(李茂) 조부 단양백 이거경(李居敬) 증조부 단양부원군 이원간(李元幹)

         사위 이간은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총제(摠制) 강원도병마도절제사(江原道兵馬都節制使)

         중군 총제(中軍摠制) 좌군 도총제(左軍都摠制)를 역임.

         1남 1녀을 낳았다.

 

삼녀 : 파평윤씨 예조참의(禮曹參議) 윤수(尹粹)

        부친 전서(典書) 윤시(尹恃) 조부 윤인선(尹仁善) 증조부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 윤침(尹忱)

        지평(持平)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병조정랑(兵曹正郞) 예조정랑(禮曹正郞)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

        동부대언(同副代言) 우부대언(右副代言) 참찬관(參贊官) 좌부대언(左副代言) 예조참의(禮曹參議) 역임.

 

외조부1 안동김씨 김흔(金忻 1251~1308)

 

아버지를 이어 상락공(上洛公)에 습봉(襲封)되었고, 성품이 활달하면서도 인자하였다고 한다.

6세 조덕유의 외조부 김흔은 부친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을 따라 1274년 일본정벌 때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참가하였고, 1290년 쿠빌라이에게 저항하던 원의 반란군 합단적(哈丹賊)이 고려로 쳐들어오자, 충청도 연기(燕岐)

부근에서 주력을 격파하고, 공주(公州) 금강까지 추격하여 모두 섬멸함. 이를 연기대첩(燕岐大捷)이라고함.

전공으로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승진하고, 곧이어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 찬성사(贊成事)

자의도첨의사사(咨議都僉議司事)로 임명되었고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승진하였다.

초배는 태원이씨(太原(忠州)伊氏)로 호략장군 이단취(李丹取)의 따님.

이배는 청주한씨로 상당부원군 한민(韓敏)의 따님.

1남 2녀를 낳았다. 

   1남 : 김승고

   1녀 : 6世 조련(趙璉)

   2녀 : 민적

 

외숙부(外叔父) 김승고(金承固) 판관(判官)

       1녀를 낳았다.

       사위 의성김씨(義城金氏) 김태권(金台權)은 의성김씨 진서공파,문학공파 파조부로 좌사간(左司諫) 역임.

 

이모부(姨母夫)

 

여흥민씨 민적(閔頔) 여흥군(驪興君) 밀직사사(密直司事)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역임.

       4남 2녀를 낳았다.

       1남 : 문온공(文溫公) 민사평(閔思平)으로 6世 삼장법사 의선의 문도이다.

       2남 : 민유(閔愉) 대제학(大提學)

       3남 : 민변(閔抃) 여흥군(驪興君) 아들 민제(閔霽)는 9世 조박(趙璞)과 태종의 장인이다.

       4남 : 민환(閔渙)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1녀 : 파평윤씨 윤계종(尹繼宗) 따님이 충혜왕(忠惠王) 비(妃) 희비(禧妃)이고, 외손자가 충정왕(忠定王)이다.

       2녀 : 양천허씨 허신(許信) 지제고(知制誥) 보문각직제학(直提學直提學)

 

외조부2 양천허씨 허공(許珙1233~1291) 문경공(文敬公)

 

부친은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 한림학사승지(銀靑光祿大夫 樞密院副使 翰林學士丞旨) 허수(許遂)

조부는 예빈소경 지제고(禮賓少卿 知制誥) 허경(許京) 증조부는 전구서승(典廐署丞) 허이섭(許利涉)

허공은 충렬왕의 묘정에 배향공신이고. 현종의 왕자인 대사(大師) 왕충(王冲)의 6대 외손으로

모친은 신정군부인 장씨(新定郡夫人 張氏)이며 목천장씨 합문지후(閤門祗候) 장극우(張克友)의 따님

첨의중찬(僉議中贊) 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 감수국사(監修國史)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 세자사(世子師) 역임

1279년 경상도 도지휘사가 되어 일본 정벌을 위한 전함을 건조하는 일을 담당하고

1290년 원의 반란군이 침입했을 때 서울을 수비하며 고려 군사를 이끌고 방어하였다.

모든 양천허씨는 문경공 허공의 후손이다. 양천허문은 평양조문처럼 재장지공 15가문중 하나이다.

초배 파평윤씨 윤극민(尹克敏)의 따님. 이배는 철원최씨 평장사(平章事) 최징(崔澄)의 따님.

5남 4녀를 낳았다.

 

외숙부(外叔父) 허정(許程) 허평(許評) 허관(許冠) 허총(許寵) 허부(許富)

 

허정(許程) 동주사(東州使) 역임. 배위는 행주기씨 동지밀직사감찰제헌(同知密直事監察提憲) 기홍석(奇洪碩)의 따님.

       동주사공파(東州使公派) 파조이다.

       1남 : 허선(許宣) 중호군(中護軍) 2남 : 허기

허평(許評) 조현대부장군감찰시승(朝顯大夫將 監察侍丞) 배위 찬성사상장군(贊成事上將軍) 염승익(廉承益)의 따님.

허숭으로 개명(許崇) 아들 허종(許悰)은 충선왕(忠宣王)의 딸 수춘옹주와 혼인하여 정안부원군에 봉해짐.

허관(許冠) 찬성사 배위는 여산송씨(礪山宋氏) 양의공(良毅公) 송분(宋玢)의 따님.

       송분의 손자 송윤번(宋允蕃) 사위가 8世 조준(趙浚)으로, 허관의 증손자 허금(許錦)과 죽마고우이다.

       허금(許錦)의 5대손이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저자 허준(許浚)이다.

       판도좌랑공파(版圖佐郞公派) 파조이다.

허총(許寵)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 상장군(上將軍) 역임.

허부(許富) 양천군(陽川君) 선부전서(選部典書) 대제학(大提學) 역임.

      배위는 교하노씨(交河盧氏) 노영수(盧潁秀)의 따님.

      노영수는 5世 정숙공의 첫째 사위이다. 7世 조덕유의 외숙부 허부는 5世 정숙공의 외손녀 사위이기도 하다.

      노영수의 다른 딸은 우왕(愚王)의 비(妃)인 의비(毅妃)이다.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파조이다.

1남 : 허신(許信) 지제고(知制誥) 보문각직제학(直提學直提學) 역임.

2남 : 허순(許順) 양천군(陽川君) 배위는 청주이씨 이계감(李季瑊)의 따님.

       처조카가 태조의 사돈 이거이(李居易)이다.

3남 : 허유(許猷) 밀직부사(密直副使) 판합문사(判閤門事) 역임. 시호는 양천군(陽川君)

       공민왕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 3등으로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치고, 홍건적 2차 침입 때

       공민왕을 안동까지 호종하고 개경을 수복하여 경성수복공신(京城收復功臣) 1등 공신이 되었다.

       공민왕이 세운 요승 신돈의 명령에 의하여 청주로 유배를 갔다.

4남 : 허저(許褚)

5남 : 허완(許完) 정당문학(政堂文學)

 

이모부(姨母夫) 김변(金賆) 김순(金恂) 왕현(王昡)/충선왕(忠宣王)

 

장녀 : 언양김씨(彦陽金氏) 첨의참리집현전대학사 (僉議參理集賢殿大學士) 김변(金賆)

         4남 3녀를 낳았다.

         1남 : 김륜(金倫) 언양부원군 (彦陽府院君) 배위는 해주최씨 부밀직사사(副密直司使) 최서(崔瑞)의 따님.

         2남 : 김우(金禑) 선부전서 (選部典書)

         3남 : 출가함, 삼중대사(三重大師) 현변(玄抃)

         4남 : 김여찬(金如璨) 수좌(首座)

 

차녀 : 안동김씨 김순(金恂) 중대광상락군(重大匡上洛君)

         4남 3녀를 낳았다.

         1남 : 김영돈(金永旽) 좌정승(左政丞)

         2남 : 김영휘(金永暉) 상서(尙書)

         3남 : 김영후(金永煦) 상락후(上洛侯)

         4남 : 김사순(金思順) 출가함, 자은종(慈恩宗) 대덕(大德)

         1녀 : 청주정씨 정책(鄭幘) 청하군 (淸河君)

         2녀 : 남포백씨 백이정(白頤正) 재신(宰臣)

         3녀 : 별리불화(別里不花) 원나라 승상(丞相)

 

삼녀 : 초혼 : 개성왕씨 수태위 상주국 평양후(守太尉 上柱國 平陽侯) 왕현(王昡)

        사위 노책(盧吸)의 손녀가 공양왕(恭讓王) 왕비(王妃)인 순비노씨(順妃盧氏)이다.

재혼 : 고려 제26대 충선왕(忠宣王) 무후.

 

사녀 : 평양조씨 6世 조련(趙璉)

 

 

주석 : 6세 조련의 장남은 조사민(趙斯民)이다. 무후로 별도로 기록하지 않고 여기에 남긴다.

        추후에 장남 조사민의 자료가 나오면 등록해야 한다. 낭장(郞將 정6품 무관직) 역임.

출처 : 평양조씨대동보,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안동김씨대종회, 양천허씨대종회, 서산류씨대종회,

         연안김씨대종회, 연안이씨족보, 파평윤씨대종회, 언양김씨대종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 : 26세손 첨추공파 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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