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世 상서(尙書) 조천우(趙千祐)
직책연표
원윤(元尹), 상서(尙書) 역임했다.
원윤은 정5품에 해당하는 관직의 품계
상서는 고려시대 육부의 으뜸 벼슬로 정3품이다, 조선시대 판서에 해당되는 직책이다.
가족관계
7世 조천우(趙千祐) 6世 조서(趙瑞)의 삼남
부친은 조서(趙瑞) 모친은 청주한씨 한강(韓康)의 따님
3녀를 낳았다.
장녀 : 파평윤씨 윤음(尹廕) 충숙왕 때 과거급제 통례문지후(通禮門祗侯) 국자사업(國子司業) 역임.
부친 예문관대제학감춘추관사(藝文館大提學監春秋館事) 윤선좌(尹宣佐), 조부 윤균(尹均), 증조부 윤응식(尹應植)
부친 윤선좌는 문하시중 윤관(尹瓘)의 7대손으로 1288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였으며, 청렴하고 검소하여,
왕과 백성으로부터 신임을 받았고, 평생 재산을 늘리지 않았으며 성품은 술을 마시지 않고 한 번도 농담이나
가무를 하지 않았다. 노장(老莊)과 형명가(刑名家)의 책들도 깊이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배우고자 하는
자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처조카이자 제자 중 한 명이 무송윤씨 윤택(尹澤)인데, 8세 문충공 조준의 첫 스승이다.
통례문(通禮門)은 고려말 조회와 국가 의례의 절차를 관장하던 관청으로 외교 사신을 맞이하거나 노인이나
급제자를 위한 연회를 주관하는 기관이다. 지후는 종6품의 통례문 관리이다.
1남을 낳았다.
외손자1 : 윤승렬(尹承烈) 진사(進士)
2녀를 낳았다.
외증손녀1 : 전주이씨 개국공신 완산군(完山君) 이백유(李伯由)
외증손녀2 :
차녀 : 경주이씨 문정공(文靖公) 이달충(李達衷 1309∼1385) 초명은 이달중(李達中) 자는 중권(仲權) 호는 제정(霽亭)
1326년 과거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여러 관직을 거처 밀직제학에 이르렀다. 요승이자 권력승인 신돈 면전에서
주색(酒色)이 도를 지나쳤다라고 하였다가 파직되었다. 공민왕이 신돈을 죽인후에 계림부윤(鷄林府尹)로
임명하였다. 모친은 죽산박씨 박전(朴顓)의 따님. 문집으로 제정집(霽亭集)이 있다.
부친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 문효공(文孝公) 이천(李蒨)으로 경주이씨 국당국파(菊堂公派) 파조이고,
6세 삼장법사 의선과 교류가 깊은 이제현과 사촌이다.
조부 문희공(文僖公) 이세기(李世基), 증조는 증(贈) 좌복야(左僕射) 이핵(李翮).
사위 이달충은 민사평의 묘지명을 지었는데 민사평은 6세 삼장법사 의선의 문도이다.
사위 이달충은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를 역임할 때 환조(桓祖) 이원계(李元桂)가 술을 따르자
서서 마셨는데 아들인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술을 따르자 꿇어앉아 마셨다는 일화가 있다.
1녀를 낳았다.
1녀 : 안동김씨 김명리(金明理 1368~1438) 성천도호부부사(成川都護府副使) 역임.
7세 이천우의 외손녀는 김명리와 3남 4녀를 낳았다.
김명리의 부친은 성균관대사성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으로
6세 조련의 장인 김흔의 형인 김선의 증손자이다.
김명리의 모친은 6세 조연수의 둘째 사위 해평윤씨 윤지표(尹之彪)의 손녀이고,
김명리의 조모는 6세 삼장법사 의선의 문도인 여흥민씨 민사평(閔思平)의 따님이고,
김명리의 외조모는 6세 조서의 사돈인 언양김씨 김륜의 따님이다.
김명리의 묘지명은 한국 유일의 불교 영향을 받은 종 모양의 분청사기로 제작되었고,
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김명리는 9世 문평공 조박(趙璞)과 함께 관직생활을 했으며,
문평공의 동서인 태종 이방원과 같은 해 과거합격 하였다.
부친 김구용은 안동김씨 문온공파(文溫公波) 파조이다.
삼녀 : 밀양박씨 정순대부(正順大夫) 판소부윤(判少府尹) 박구(朴球)
부친 간의대부(諫議大夫) 박인익(朴仁翊), 조부는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박화(朴華) 증조부는 박함(朴諴).
부친은 밀양박씨 사문진사공후(四門進士公后) 간의공파 파조이다.
박구의 사촌인 예문관학사(藝文館學士) 박의중(朴宜中)은 8世 문충공 조준과 고려사를 편찬하였다.
2남을 낳았다.
외손자1 : 박의림(朴義林) 제천 현감을 지낼 때 의림지(義林池)를 크게 개축하였고,
제천 의림지의 지명도 박의림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손자2 : 박윤림(朴允林)
외조부 한강(韓康)
6세 조굉의 외조부 한강의 부친은 예빈경(禮賓卿) 한광윤(韓光胤)이고. 모친은 나주호장(羅州戶長) 진각(陳慤)의 따님.
배위는 함종임씨 임전우(任全祐)의 따님이다, 시호 문혜공(文惠公)으로 초명은 한경(韓璟)이다.
1243년 고종(高宗) 때 16세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여러 고을을 다스렸는데, 둔전(屯田)이 중지된 곳을 다시 개척하여
곡식 2,000석을 거두었으며, 향리들이 함부로 것을 중지해서, 백성이 편안 해졌다.
이러한 공으로 예부낭중(禮部郞中)으로 영전하여, 이후 공부시랑(工部侍郞)과 간의대부(諫議大夫)를 거쳐서 1271년 5월
대사성(大司成)으로 양순(梁淳) 등 53명을 선발함. 1375년 10월 좌복야(左僕射) 한강(韓康)이 지공거(知貢擧), 승선(承宣)
박항(朴恒)이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최지보(崔之甫) 등 25명, 명경업(明經業) 1명에게 급제(及第)를 내려주었다.
1284년 10월 원부(元傅) 허공(許珙) 한강(韓康) 등이 역사서 고금록(古今錄)을 편찬 완성하였다.
1288년 10월 찬성사(贊成事) 한강(韓康)이 지공거(知貢擧), 국자좨주(國子祭酒) 이익배(李益培)가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뽑았는데, 이부(李榑) 등 31명에게 급제(及第)를 내려주었다. 불교를 몹시 좋아하여 충렬왕에게
전란 중 피폐해진 국가이념인 불교 중흥을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수량품(壽量品)을 추천하였다. 그후에도 왕에게
많은 정책을 제안하였는데 혹독한 추위와 무더위에 미음을 두어서 굶주리고 목마른 백성을 진휼하는등
전쟁의 혼란을 극복하고 국가안정을 도모했다.
외숙부(外叔父) 한사기(韓謝奇), 한사보(韓謝譜), 한사수(韓謝壽)
한사기(韓謝奇) 간의대부(諫議大夫)역임. 초배 평강채씨 채인규(蔡仁揆)의 따님 이배 고양군부인 정씨(鄭氏)
1남 : 한악(韓渥) 시호는 사숙공(思肅公) 정당문학(政堂文學) 우정승(右政丞)
손자 한수(韓脩)가 6세 조위(趙瑋)의 묘지명을 쓰고, 지은이는 가정 이곡(李穀)이다.
한수의 아들은 한상경(韓尙敬)으로 개국공신이다.
2남 : 한영(韓永) 정혜공(正惠公) 검교판서(檢校判書) 원나라 하남부총관(河南府摠管)
3남 : 한준(韓浚)
4남 : 한연(韓蓮)의 아들 한유(韓裕), 손자 한규인(韓珪仁), 증손자 한경(韓卿)이고,
한경의 따님은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 로, 태조 이성계(李成桂) 첫째 부인이다.
1녀 : 여산송씨 송운(宋惲) 아들 송선(宋璿)은 태종비(太宗妃)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외조(外祖)이다.
한사보(韓謝譜) 전교(典校) 청주목사(淸州牧使)
1남 : 한홍시(韓弘時) 부안군(扶安君)
한사수(韓謝壽) 판관(判官)
1남 : 한옥(韓沃) 예빈시경(禮賓寺卿)
2남 : 한담(韓澹)
3남 : 한택(韓澤)
이모부(姨母夫)
죽산안씨 안전(安戩)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경상(慶尙)·충청(忠淸)·서북(西北) 3도(道) 도지휘사(都指揮使)를 역임
1남 : 안유충(安惟忠) 판서(判書) 역임. 6世 조련(趙璉)의 사위인 권렴(權廉)의 고모부이며, 익제 이제현과 동서지간이다.
출처 : 평양조씨대동보, 고려사, 고려사절요, 한국학중앙연구원, 청주한씨중앙종친회, 파평윤씨족보,
경주이씨중앙화수회, 밀양박씨족보, 디지털김제문화대전
작성 : 26세손 첨추공파 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