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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世 삼사사(三司使) 조서(趙瑞) 장민공(莊敏公)

 

고려사 권105 열전(列傳) 열전 권제18 제신(諸臣) 조서(趙瑞)

 

조서(趙瑞)는 성품이 영민하고 호탕하며 고매하였다. 아버지가 큰 별이 집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드디어 조서를 낳았는데 어렸을 때의 자(字)가 성래(星來)였다.

 

충렬왕(忠烈王)때 과거(科擧)에 급제하자,

왕이 친히 나와 앉아 이름을 부르고 서대(犀帶)를 하사하였다.

 

충선왕(忠宣王)이 세자가 되었을 때, 서원후(西原侯)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자,

조서와 김광좌,차원년은 모두 노래를 잘 한다고 참석하게 하였다.

 

김광좌가 시경(詩經)의 서리(黍離)편과 백주(栢舟) 편을 끼워넣어 쌍연곡(雙燕曲)을 노래하자,

민지(閔漬)가 시경(詩經)의 하피농의(何彼穠矣) 편으로 보충하였다.

이로부터 내전(內殿)에서 잔치가 열리면 반드시 이 곡을 부르게 되었고,

조서와 김광좌·차원년은 모두 왕의 총애를 받았다.

보문서직(寶文署直)에 임명되고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우승지(右承旨)에 올랐다.

 

부친 조인규가 조비(趙妃)의 일로 무고되어 원(元)에 머물게 되자 조서가 그를 따라갔다.

하루는 황제의 수레가 밖으로 나오자, 조서가 여러 아우를 이끌고 함께 길가에서 뵈니,

돌아보며 묻고 칭찬하였으며 얼마 후에 조인규의 환국(還國)을 허락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동지밀직(同知密直)에 올랐으며,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러 원에 들어가자,

황제가 회원대장군 고려국부원수(懷遠大將軍 高麗國副元帥)로 임명하고

삼주호부(三珠虎符)를 하사하였다.

 

돌아오게 되자 왕도 조서를 검교찬성사(檢校贊成事)로 임명하고

벽상삼한삼중대광 대사헌(壁上三韓三重大匡 大司憲)을 더하였으며 평양군(平壤君)으로 봉하였다.

 

충선왕 5년(1313) 음력 7월 20일에 삼사사(三司使)로 재직하다가 졸하였다,

시호(謚號)는 장민(莊敏)이다.

아들은 조굉(趙宏)·조천사(趙千禩)·조천우(趙千祐)이다.

 

직책연표

 

1297년 12월 13일 충렬왕 23년 우승지(右承旨)

1298년 5월 6일 충렬왕33년 광정승지 전객경(光政承旨 典客卿)

1307년 3월27일 충렬왕33년 좌승지(左承旨)

1307년 6월12일 충렬왕33년 갑진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원에 파견되어 황제의 생일을 축하함.

1308년 1월 27일 충렬왕 34년 봄 정월 정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원에 파견되어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함

1309년 3월 25일 충선왕 원년 무신 대사헌(大司憲)이 되고 원(元)에서 돌아왔는데,

황제가 참리(參理) 김심(金深)을 고려도원수(高麗都元帥)로, 조서를 부원수(副元帥)로 삼았다.

1309년 4월 19일 충선왕 원년 조서(趙瑞)를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동생 조련(趙璉)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임명.

1310년 9월 11일 충선왕 원년 조서(趙瑞)와 조련(趙璉)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임명.

1313년 7월 20일 충숙왕 즉위년 삼사사(三司使)로 재직중 졸하였다.

 

가족관계

 

부친은 조인규(趙仁規) 모친은 한산조씨(漢山趙氏) 조온려(趙溫呂)의 따님

배위는 청주한씨(淸州韓氏) 문혜공(文惠公)한강(韓康)의 따님.

한강(韓康) 후손중에 조선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한명회(韓明澮)가 있다.

 

장남 : 조굉(趙宏)

차남 : 조천사(趙千禩) 족보에는 초천미(趙天?)

삼남 : 조천우(趙千祐)

장녀 : 원나라 재상 안길왕(安吉王) 야아길니(也兒吉尼)

차녀 : 언양김씨(彦陽金氏) 검교시중(檢校侍中) 김경직(金敬直)

삼녀 : 연덕부원대군(延德府院大君) 왕전(王瑱)

 

출처 : 평양조씨족보, 고려사, 고려사절요

주석 : 정숙공 조인규의 장남으로 3남3녀를 낳셨으며, 직계 후손들이 제주공파, 병사공파, 정랑공파 파조분들이시다.

 

작성자 : 26세손 첨추공파 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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